글들을 뒤적거리다가 재밌는 것을 발견했다....평소에도 같은 프린스턴대 출신이지만 시각이 이렇게 다르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니...두 분 다 존경하는 경제학부 교수이기에 뭐라 말은 못하겠지만 판단은 독자의 몫.

<이준구> - 이준구교수님 홈페이지에서 펐습니다.
무상급식 관련 논쟁의 핵심은 가치관의 충돌이다
무상급식 이슈는 기본적으로 한정된 자원을 어느 곳에 우선적으로 배정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의 문제다. 전면 무상급식 실시를 위해 좀 더 많은 세금을 낼 수도 있고, 다른 데다 써야 할 돈을 이쪽으로 끌어다 써야 할 필요도 생길 수 있다. 사람마다 우선순위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 있고, 따라서 무상급식이 바람직한지의 여부에 대한 생각도 다를 수 있다. 다른정책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문제도 차분한 토론을 통해 이견을 해소해 나감으로써 적절한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일부 인사들은 이 문제를 극단적인 이념적 대립구도로 몰아넣음으로써 나 죽기 아니면 너 죽기의 싸움판을 만들고 있다. 무상급식이라는‘망국적 포퓰리즘’과의 싸움에 선봉장을 자처하고 나선 오세훈 서울시장이 그 대표적 예다. 망국적 포퓰리즘을 여기서 막지 못한다면 나라가 무너져 버릴 것이라고 외치는 그에게서 이념투사의 결연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이런 이념적 대립구도를 통해 보수층을 결집하는 정치적 효과를 얻을지 모르지만, 생산적인 토론이 전혀 이루어질 수 없게 만드는 불행한 결과를 빚고 있다.
원래 정치인들이 과장에 능하다는 것은 잘 알지만, 어떻게 여기에다 ‘망국적’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갖다 붙였는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니, 우리나라가 무상급식 하나실시해서 망할 정도로 허약한 나라라는 말인가? 아니면 무상급식 실시하는 데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 나라 살림이 당장 거덜이라도 날 것이라는 말인가? 이런 얼토당토않은 과장법의속셈이 반대파를‘나라 망치려 드는 사람’으로 몰아가려는 데 있음을 읽어내는 것은 그리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 시장은 무상급식보다 더 시급한 과제가 많다고 주장한다. 여론조사를 해 보면 가장 시급한 과제로 드러나는 것이 학교 안전이라고 말한다.또한 공교육이 부실해지면 사교육비가많이 들어가니 방과후 학교도 강화해 달라는 요청도 많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현장을 다니면서 들어보면 학교의 낙후된 시설부터 개선해 달라는 요구도 많았다고 덧붙인다.나는 이와 같은 그의 주장을 존중한다. 무상급식과 이 과제들 사이에서 어떻게 우선순위를 부여해야 할 것인지는 차분한 토론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그의 발언에는 논점을 교묘하게 흐리려는 어두운 의도가 숨겨져 있다.교육에 사용될 예산의 틀 안에서만 무상급식의 우선순위를 논의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지않은가? 당연한 말이지만, 서울시 전체의 예산이라는 틀 안에서 무상급식의 우선순위를 논의해야만 적절한 결론이 도출될 수 있다. 나는 오시장이 이런 단순한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구도에서 무상급식 문제에 접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자신이 유리한 입지를 선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런 구도를 선택했을 것이 분명하다.
서울시 전체의 예산이라는 틀 안에서 논의할 때, 무엇보다 우선 도마에 올라야 할 것은 오 시장이 개인적 애착을 갖고 있는 사업들이다. 예를 들어 한정된 예산이 디자인 서울, 한강 르네상스, 아라뱃길 같은 사업들에 우선적으로 투입되어 하느냐, 아니면 무상급식에 우선적으로 투입되어야 하느냐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무상급식 문제를 이런 틀에서 논의하게 되면 자신이 애착을 갖고 있는 사업이 차질을 빚게 되는 문제가 바로 발생한다.
바로 이런 두려움 때문에 오 시장이 한사코 무상급식에 반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상급식 문제와 관련해 한 가지 역설적인 점은, 이것의 실시로 인한 1차적 혜택이 중상빈곤에 대해 사회도 책임의 일부를 져야 한다면, 사회복지제도의 수혜자들이 느끼는 수치심을 최소화해 주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제도는 일종의 사회적 보험의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서도 수혜자들에게 쓸데없이 수치심을 느끼도록 만들어서는  안 된다. 사회복지제도는 사회적 안전망(social safety net)을 구축한다는 뜻에서 도입된 제도다. 우리가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할 수 있듯, 뜻하지 않게 빈곤의 구렁텅이로 빠질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 대비해 안전망을 쳐놓아 두자는 뜻에서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사회복지제도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험금을 탈 때 수치심을 느낄 필요가 없는 것처럼, 사회복지제도의 혜택을 받으면서 수치심을 느껴야 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닐까?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무상급식의 경우에는 수치심을 느끼는 주체가 어린이라는 점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그 어린이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손톱만큼의 책임도 없다. 가난한 부모를 둔 것이 죄가 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가정의 어린이들이 무상급식으로 인해 조금이라도 마음의 상처를 입게 만든다면 그것은 이만저만 부당한 일이 아니다. 모든 어린이가 가정의 경제상황과 관계없이 떳떳하게 무상급식의 혜택을 받을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무상급식의 문제를 보편적 복지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다. 보편적이든 선택적이든 복지는 복지일 뿐이며, 그렇다면 이에 따르는 수치심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유한 가정의 어린이도 함께 혜택을 받는다 해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어린이 때문에 무상급식 제도가 도입되었다는 사실이 지워지지는 않는다. 보편적 복지의 관점에서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자는 주장은 물타기를 해서 진실을 감춰 보자는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바로 이 점에서 학교에서의 급식이 가치재(merit goods)의 성격을 갖는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가 어린이들에게 무상으로 의무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그것이 가치재의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이 최소 9년의 교육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에서 의무교육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재벌의 자제도 무상으로 교육의 혜택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무료로 제공하는 서비스가 반드시 수업에만 국한되어야 할 논리적이유는 없다. 수업을 받기 위해 필요한 교과서도 무료로 제공될 수 있고, 수업 도중 하게 되는 식사도 무료로 제공될 수 있다. 현재 가난한 가정의 어린이들에게 제한적인 무료급식을 실시하는 이유는 모든 어린이가 영양 있는 점심을 먹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에 있음이 분명하다. 모든 어린이가 영양 있는 점심을 먹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급식이 바로 가치재의 성격을 갖는다는 뜻이다. 가치재라는 것이 바로 그런 의미로 정의된 개념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사실은 모든 어린이가 가치재로서의 무료급식에 대해 당당한 권리를 갖는다는 점이다. 이제는 무료급식이 시혜의 차원에서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물타기에 의해 모든 사람이 함께 얻게 된 혜택도 아니다. 가난한 가정의 어린이와 부유한 가정의 어린이가 똑같이 아무런 자존감의 손상 없이 당당하게 무료급식의 혜택을 받을 권리를 갖고 있다. 내가 무료급식을 가치재의 차원에서 접근하자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우리의 새싹들이 부당한 수치심을 느끼지 않고 해맑게 자랄 수 있다면 그 비용은 얼마든 정당화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면 무상급식의 실시에 가장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물론 내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얼마든 있을 수 있다. 아라뱃길을 뚫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4대강을 시멘트로 처바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무상급식과 관련된 논쟁의 핵심이 바로 이와 같은 가치관의 충돌에 있다는 사실이다.



<서승환> - 국민일보시평입니다.
소위 친환경 무상급식을 두고 서울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점입가경이다. 서울시 의회는 지난 1일 무상급식 조례안을 통과시켜 무상급식에 드는 비용의 일부를 서울시 예산에 반영시키도록 했다. 서울시장은 시의회가 시의 예산 편성권을 침해했다고 강력하게 비난하면서 시의회와의 협의를 거부했고 시의회는 예산심의를 볼모로 잡아 서울시 예산안이 처리시한을 넘기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번 주부터 예산안 심의를 재개하기로 했지만 갈등은 점차 심화되는 양상이다. 이러한 민망한 상황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진보성향의 후보들이 재미를 좀 본 무상급식을 실제 실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것으로 이미 예견된 것이다.

무상급식과
연관된 논란의 중심에 보편적 복지가 있다. 보편적 복지라는 것은 모두에게 동일한 복지의 혜택을 주자는 것으로서 필요한 계층에게만 선택적으로 복지의 혜택을 주자는 선별적 복지에 대응되는 개념이다. 어느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할지는 개인의 믿음에 달려 있고 모든 사람의 사상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함부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최근 서울시에서 일어나는 일과 관련해서는 사상의 자유와는 무관한 너무도 많은 지적들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절차적 정당성이다. 서울시 의회는 서울시가 당장 내년부터 예산에 700억원 정도를 계상해야 할 조례를 서울시와 충분히 협의도 하지 않고 전광석화처럼 통과시켰다. 다수결로 통과시켜 적법하니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국회에서 다수결로 통과된
4대강 사업 등에 대해서도 입을 다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첨예하게 의견이 갈려 있는 사안일수록 시간을 갖고 충분히 협의해서 합의점을 도출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정책 수반에 소용되는 비용을 줄이는 최선의 길임을 망각했던 것은 아닐까.

무상급식 주장과 연관된 논의의 적절성 여부도 지적할 수 있다. 서울시 연간 예산의 0.3%밖에 안 되는 700억원 정도로 아이들 공짜
점심 좀 주자는데 너무 하는 거 아니냐는 주장이 있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런 주장은 진실과 다를 수 있다. 경제학에서 금과옥조로 여기는 원리 중의 하나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이 있다. 어떤 일을 하든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700억원을 무상급식에 쓰면 다른 곳에 쓸 예산을 줄일 수밖에 없다. 무상급식이 다른 일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700억원이 서울시 예산규모에 비하면 별거 아닌데 왜 못해 주느냐고 말할 수는 없다. 무상급식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일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의 일을 덜 중요하다고 폄하할 권리는 없기 때문이다.

여론조사를 해 보았더니 85% 정도에 달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찬성하니 무상급식을 할 정당성이 확보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공짜면 소도 잡아먹는데도 불구하고 15%나 반대의견이 나왔다는 사실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 100만원씩 주겠다는 안건을 국민투표에 부친다면 찬성률이 얼마나 될까. 압도적인 찬성률이 나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인가.

모든 아이들에게 무상급식을 할 수밖에 없는 중요한
이유로 낙인효과를 든다. 다른 아이들은 돈을 내고 사먹는데 자기는 공짜로 먹는 것을 친구들이 보면 어린 가슴에 얼마나 멍이 들겠냐는 것이다. 중요한 고려사항이지만 낙인효과 때문에 모두에게 공짜로 점심을 주어야 한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급식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낙인효과를 제거하는 문제는 메커니즘 설계의 문제이다. 급식과정에서 모든 아이들이 동일하게 취급되는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방법에 무상급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다 싸게 낙인효과를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접근방법일 것이다.

2011/01/10 08:06 2011/01/10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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